33을 만든 사람들
제목: 33(The 33)
개봉일: 2015. 8. 6
장르: 드라마
러닝타임: 126분
영화 33은 보기 드문 체코 영화로 칠레의 광산매몰로 지하에 갇혀 있던 33인의 생환을 다룬 영화입니다. 칠레 영화이기는 하지만 미국에서도 개봉하였기에 영어로 된 영화를 접할 수 있습니다. 영화 33의 감독은 패트리시아 리건으로 미라클 프롬 헤븐, 걸 인 프로그레스, 언더 더 쎄임 문 등을 연출하였습니다. 영화의 주연은 안토니오 반데라스로 매몰된 현장에서 지도력과 임기응변의 모습을 아주 현실적을 표현해 주었습니다.
실화가 바탕이 된 이 영화는 저 또한 뉴스에서 짧게 접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1분도 되지 않는 뉴스 소식으로 접했던 소식이기에 한국의 탄광 수준의 사고로 생각하고 영화를 접했는데 완전히 다른 스케일과 매몰자를 구조하기 위한 노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광산 매몰자 33명 전원이 살아남은 기적의 이야기
영화는 2010년 8월 5일에 있었던 칠레의 산호세 광산 사고를 생동감 있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광산의 노동자라는 삶이 어느 나라나 그러하듯 고되고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산호세 광산의 노동자들은 일은 고되지만 서로를 신뢰하고 의지하며,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는 시작합니다.
그러한 행복도 8월 5일 사고와 함께 하루아침에 산산이 무너집니다. 산호세 광산 사고는 보도를 통해 전국을 넘어 전 세계적인 관심을 갖게 된 사고로 인해 칠레정부는 사고 다음 날인 8월 6일 국가비상상태를 선포하게 됩니다. 영화로 보여주는 산호세 광산은 우리가 보아왔던 한국의 광산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한국의 광산은 갱도를 따라 작은 기차를 이용하여 오가는 작은 갱도용 광산으로 산호세 광산 역시 그러한 모습의 갱도 속에서 발생한 사고를 생각하고 영화를 접하였는데, 광산은 지하로 내려가는 도로와 같은 갱도를 만들고 트럭 등 차량이 내려갈 만큼 크고, 방과 같이 커다란 사무 및 생활의 공간까지 있는 커다란 광산이었습니다.
사고가 일어나고 매몰 광산에서 무사히 생존한 33명은 이제 구조와의 전쟁과 사투를 벌이게 됩니다. 정부의 국가비상사태 및 세계 각국의 도움의 손길,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조까지는 그렇게 손쉽게 해결될 수 있는 작은 사고가 아니었습니다. 매몰된 후 17일이 되어 작은 드릴로 뚫은 라인을 통해 쪽지를 전달하고 생존자 등의 소식을 접할 수 있게 됩니다. 그 전까지 3주 간의 지하 생활은 말 그대로 생지옥과도 같은 생활이었습니다. 섭씨 30도가 넘는 무더위와 그보다 심각한 90%가 넘는 습도 그리고 지하 700미터 갱도 속에서 그들은 3주를 견뎌 내고 지상과 소식을 접할 수 있던 것이었습니다.
수중에 있던 모든 식사를 언제 구조될지 모르기에 최소한의 음식으로 모두가 공평하게 나누어 배분하며, 식수를 확보하고, 사람들의 동요를 막는 역할은 바로 주인공 반데라스가 이끌어가야 하는 33명의 팀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루 한끼로 배분되는 식사에 33인 누구 하나 만족하여 매몰을 견디어 내기란 쉽지 않은 생활이었습니다.
그래도 하늘이 돕고 가족들의 관심과 소망이 하늘에 닿았던 것일까, 매몰 29일 되어 본격적인 구조용 드릴 작업이 전개되기 시작하고, 우여곡절 끝이 43일째 되는 날에는 30Cm 직경의 구멍을 뚫는데 성공하고, 51일째 되는 날에는 구조용 캡슐이 도착하며, 65일에 캡슐 구조를 위한 터널 작업을 종료한 후 역사적인 구조의 순간이 69일째 되는 날 완료되며 매몰되었던 33인은 인명사고 없이 모두 구조되기에 이릅니다.
우여곡절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3달이 넘는 시간 동안 지하 700미터 갱도에서 지내던 33인 모두를 구조하게 됩니다. 지상과의 소식은 두절되고 음식도 없었던 매몰 초기에는 구조의 소망을 가지고 견디어 내던 33명이었지만 지상과 소식이 전해지고 음식과 물이 배달되고 나서는 이율배반적으로 서로를 믿지 못하고 의심하며 다투는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사고 수습의 모습 속에서 우리의 세월호와 이태원사고가 오버랩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사고란 안전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고, 그 절차를 원칙대로 지키지 않아서 발생한 것이고, 그렇기에 사고 이후에는 당연히 그에 대한 행정적 조치가 수반되어 추후 그런 사고를 예방하고, 생존자들에겐 그에 대한 보상을 하는 것이 바른 사회인 것인데 영화 33에서도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었을 때와는 다르게 사고에 대한 후속조치는 용두사미의 모습으로 조용히 끝을 맺습니다.
회사의 책임은 직무유기에 대한 무죄판결로 노동자들에게 보상할 책임을 면제해 줍니다. 영화는 이러한 씁쓸한 소식을 알리며, 생존자들의 실존 생존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여주면서 마무리 됩니다. 생존자들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낀 것은 어쩌면 저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라 생각합니다. 원래도 가진 것 없었고, 낮은 계층이었던 그들은 결국 소외되고 쓸쓸한 결말로 행복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며 영화는 끝을 맺습니다.
33 무사생존의 감동은 계속됩니다.
영화가 반드시 해피엔딩일 필요는 없습니다. 새드엔딩의 영화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것이 실화라고 한다면, 그리고 사회적 관심을 가진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라면 그 결말은 조금은 아름답고 행복한 결말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관객인 한 사람으로서의 작은 소망 아닐까요?
영화 33도 그런 모습에서 지켜보게 되었는데 영화를 돌아보니 33명의 생존자가 모두 구조되는 그 클라이맥스의 순간이 어쩌면 이 영화의 최고의 순간이었고,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던 것입니다.
작디작은 개인이 본인이 처한 불의함과 사고를 해결하고 보상 받는 것까지 기대한다는 것은 어쩌면 무리한 요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으로 맴돌며 이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