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의 제작진
제목: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The Boy in the Striped Pajamas 2008)
개봉일: 2008년 9월 12일
장르: 드라마
러닝타임: 94분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은 마크 허먼 감독이 각본과 함께 감독까지 맡아 만든 작품입니다. 그는 “그래도 베니스가 좋다”, “브래스드 오프”, “작은 목소리”, “사랑의 캔버스” 등을 만들었는데 영화의 대한 열정에서 인지 그가 만든 모든 작품에서 그는 직접 각본까지 맡아 작업을 하였습니다.
영화의 주인공 어린이는 에이사 버터필드와 잭 스캔론이 맡았습니다. 두 아이의 순진함과 우정 사이에 일어나는 행복과 슬픔을 두 어린 배우가 너무나도 잘 그려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치의 폭정이 만들어낸 슬픈 우정
영화의 배경은 세계 2차 대전이 한창인 1940년으로 주인공인 브루노는 베를린에서 장교인 아버지로 인해 유복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브루노의 아버지가 승진을 하여 베를린이 아닌 폴란드의 수용소를 맡는 직책에 배치되어 베를린을 떠나 폴란드 수용소 옆의 숙소로 이사를 가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아내와 가족들은 그 결정이 썩 내키지 않지만 나치에 충성하는 군인인 아버지는 가족들을 이끌고 폴란드 수용소 옆 숙소로 이사를 하게 됩니다.
도시에서 살던 브루노에게 수용소와 본인의 숙소 외엔 볼 수 없는 폴란드의 생활은 지루하고 심심하기만 합니다. 자기 나이 또래의 사람이라고는 만날 수도 없고, 교사도 영입하여 집에서 누나와 공부를 하는 등 그가 또래와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합니다. 게다가 만날 수 있는 사람도 사실 몇 명이 되지를 못하는 정말로 지루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사를 온 첫날부터 그의 집엔 베를린 생활과는 다른 눈에 띄는 변화가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줄무늬 파자마 차림의 사람들이 노예처럼 그의 집에서 여러 가지 일을 돕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독일군 운전병들보다도 낮은 정말로 노예와 같은 신분으로 일을 하고 있던 것입니다.
수업을 마치고 지루함에 빠진 브루노는 그네에서 놀다 다쳐 집안에서 일하는 줄무늬 파자마의 파벨에게 치료를 받게 되는데, 그때 브루노는 파벨이 유대인으로 의사였던 사실을 알게 됩니다. 어린 그에게는 의사 선생님이 자신의 집에서 집안 잡일을 하는 것이 의아하기만 합니다. 유대인을 강제수용한 것을 모르는 브루노였기에 자신의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입니다. 브루노의 엄마는 이곳의 생활이 아이들의 교육에 적합하지 않음을 아버지에게 말해 보지만 그렇다고 나치군 장교인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딱히 없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브루노는 몰래 밖으로 나가 놀게 되고 수용소 철조망을 두고 거기에 생활하고 있는 자신 또래의 슈무엘을 만나게 됩니다. 브루노는 슈무엘에게 그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 묻지만, 슈무엘도 자신이 그곳에 있음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또래가 둘 밖에 없는 상황인지라 둘은 친구가 되어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됩니다.
어느 날 슈무엘이 브루노의 집에 오게 되는데 반가운 나머지 케이크를 슈무엘에게 줍니다. 그러나 이는 일하는 장교에게 걸리게 되고 브루노는 자기가 준 것이 아니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결국 슈무엘은 다시 수용소로 보내져 호되게 혼나게 됩니다. 브루노는 슈무엘을 다시 찾아가 사과를 하고, 슈무엘은 이런 브루노를 용서하고 다시 친구로 지냅니다.
슈무엘은 아빠를 찾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브루노는 그런 슈무엘을 도와 아버지를 찾아 주고자 합니다. 그런데 브루노의 어린 마음에 깔끔하게 차려입은 자신의 복장으로는 슈무엘의 아버지를 찾을 수가 없고, 슈무엘과 같이 줄무늬 파자마를 입고 수용소에 들어가야 슈무엘을 도와 그의 아버지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결국 브루노는 줄무늬 파자마를 입고 수용소 안으로 들어가 슈무엘과 함께 그의 아버지를 찾아 돌아다닙니다.
그런데 수용소 사람들이 나치 군인들에 의해 한 곳으로 밀려 들어가기 시작하며 브루노와 슈무엘도 그 무리에 휩쓸려 들어가게 됩니다. 거기서 그들은 옷이 벗겨지게 되고 다음 방에서 그들은 가스실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어찌 보면 어처구니없는 사건으로 브루노와 슈무엘은 죽음을 맞이합니다.
브루노가 사라진 것을 발견한 가족들은 집안부터 뒤지기 시작하여 브루노의 옷을 발견하고는 그가 수용소 안으로 들어갔음을 직감합니다. 비가 세차게 내리는 수용소 안에서 브루노의 온 가족과 군인들은 브루노를 찾습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는 브루노가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오열하며 영화는 슬픈 마무리를 하게 됩니다.
순진무구한 두 어린 아이의 우정을 통해 배우는 양심없는 어른들의 세상
누군가는 시대적 환경이 만들어낸 비극일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에서 보듯이 이념과 시대적 대립이 어른들 사이에서는 이해되는 상황일지라도 어린이의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고, 이해되지도 않는 그런 세상입니다. 이념적 사고와 배척의 정신 또한 교육을 통해서 생성되는 것임을 영화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집에서 나치식 교육을 받는 브루노와 누나의 모습에서, 그리고 누나가 서서히 나치의 생각과 사고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한 자신의 안위와 성공을 위해 그런 이념에 충성하는 나치 군인들의 모습에서 씁쓸함과 함께 나의 모습을 돌아보게 됩니다.
브루노의 죽음은 그의 가족 입장에서 보면 당연히 사고일 것이고, 그 배후에 슈무엘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발 물러서서 생각해 보면 브루노와 슈무엘 모두 어른이 만든 대립의 세상에서 이유 없이 죽어나간 어린 생명일 뿐입니다.
커다란 우주에 작다고 하면 작을 수 밖에 없는 지구라는 작은 세상에 살아가면서 아직도 민족과 이념에 대립하여 총부리를 들이대고 전쟁을 일삼으며 이로 인해 무수한 약자들이 죽어 나아가는 것을 보면 이 영화가 알려주려고 했던 작은 외침이 들리는 듯 합니다.
영화 후에도 슬픔과 깊은 생각에 잠기는 영화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