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명작을 만든 위대한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제목: 쉰들러리스트(Schindlers List 1993)
개봉일: 1993년 12월 15일
장르: 드라마
러닝타임: 194분
1980년 1990년대 SF 영화의 거장이며, 현대영화의 거장인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든 작품입니다. 주연을 맡은 리암 니슨의 경우 당시 청소년의 나이였기에 나의 기억에 당시로서는 생소한 인물이었습니다. 지금처럼 액션 스타도 아니었기에 더욱 익숙하지 않은 주인공의 선택으로 여겨졌습니다. 주연인 리암 니슨의 파트너 역할의 조연은 벤 킹슬리가 맡았습니다.
나치의 인종 몰살 속에서 기록된 생명책 쉰들러리스트
1990년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ET와 백 투 더 퓨쳐와 같은 SF영화 그리고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와 같은 액션물의 거장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드라마 장르의 쉰들러리스트를 만들었다고 했을 때, 그리고 그 영화가 흑백으로 제작되었으며, 3시간의 러닝타임을 가졌다고 했을 때 과연 이 영화가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왜 그가 이 영화를 찍었는지 후에 알게 되었습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바로 유대인이었던 것입니다. 어찌 보면 그는 역사를 소중히 여기는 유대인들의 교육에 의해 뼛속까지 유대인의 교육법을 익히며 살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독일 나치의 유대인 말살정책과 히틀러의 이야기는 유대인이라면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이야기였을 것입니다.
결국 액션과 SF의 거장이었던 스티븐 스필버그는 드라마 장르의 쉰들러리스트를 통해 기존과는 다른 영화의 연출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쉰들러리스트를 통해 그전까지 상업 영화에만 두각을 나타낸다는 소리를 듣던 스티븐 스필버그는 1994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촬영상, 미술상, 음악상, 편집상을 휩쓸었으며, 골든 글로브에서도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을 받는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영화는 쉰들러가 독일 장교들에게 접근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는 갖은 선물 공세로 독일 장교들과 관계를 맺어 나아갑니다. 원래 독일에서 사업가였던 그는 독일이 유럽을 점령하자 폴란드로 이주하여 사업을 구상하게 됩니다. 사업수완이 뛰어났던 그는 나치 장교들과 관계를 맺음으로 저임금의 유대인을 직원으로 활용하여 큰 돈을 벌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독일 군인들과 관계를 통해 사업수완을 넓혀 나갔기에 그의 회사는 크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회계사인 잇자크 스턴을 통해 자신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양심이란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독일군의 홀로코스트 유대인 학살이 극에 달하자 수용소로 그들을 수용하여 돈이 되는 금니 등은 취하고 사살해 버리는 등 인권을 유린하는 모습을 보며 그들을 구해낼 결심을 하게 됩니다. 당시 잇자크 한 명 만을 간신히 빼낼 수 있었던 쉰들러는 독일 군부 특히 유대인을 말살하는 악독한 장교들도 의도적으로 만나며 유대인들을 구하려는 계획을 실행해 나갑니다. 그는 유대인 구출작전을 결심한 후 갖은 방법으로 유대인들을 자신의 회사에 직원으로 선발하여 그들을 구해내려는 계획을 구체화시킵니다.
그러나 아무리 쉰들러라도 하더라도 수용소에 잡혀 있는 모든 유대인들을 구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본인의 군수품 회사 운영을 위해 리스트를 만들어 그간 뇌물과 관계를 맺은 독일 나치 간부들에게 자신의 회사에 필요한 리스트라는 명목으로 유대인 직원을 활용하도록 해 달라는 요구를 합니다. 결국 뇌물에 넘어간 나치 간부들은 쉰들러의 제안을 들어주게 되며 그렇게 자신의 군수회사에서 일을 하도록 빼내게 됩니다.
전쟁은 1년도 채 되지 않아 막을 내리게 됩니다. 유대인들을 구하기 위해 모든 노력과 재산을 썼던 쉰들러는 거의 빈털터리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패전의 멍에를 쓰고 상황이 바뀌어 도망을 가야 하는 처지도 놓이게 됩니다. 결국 그는 자신이 구해준 유대인 직원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눕니다. 그 자리에서 몇몇 유대인들은 생명의 은인인 쉰들러를 위해 금니로 만든 반지를 선물합니다. 쉰들러는 그 금반지를 받으며 자신의 몸에 걸치고 있는 장식품을 돌아봅니다. 그 장식품을 팔아 뇌물로 주었다면 한 명의 유대인을 더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며 쉰들러는 오열하며 영화를 막을 내립니다.
폴란드 유대인에게 있어 진정한 구세주는 누구였을까?
전쟁의 광기는 사람을 정신 병자처럼 만들어 버립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장난과도 같이 수용소 베란다에서 유대인에게 총을 쏘아 사살하는 나치 장교의 모습. 어떠한 죄목도 모르면서 단지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상부의 명령이라는 이유로 유대인을 죽이는데 조금의 망설임도 없던 나치 군일들의 모습을 보면 인간의 양심이 어디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어떤 이는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양심을 알게 되어 자신의 전재산과 모든 힘을 다하여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해내겠다는 노력을 한 것과는 달리 말입니다.
사람이 양심을 잊게 되면 사람임을 포기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광기의 나치 통치 속에서 살아 있는 양심으로 살았던 쉰들러, 그리고 그로 인해 후대를 이어갈 수 있었던 유대인들이 그의 무덤에 헌화하는 앤딩 크레디트 장면은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참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게 하는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영화로 오래 남을 것입니다.